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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 곰은 잘 놀라고 불안행동… 먹이 감량 계획 세워 줄여가니… 암곰·살찐 곰부터 겨울잠 들어[최태규의 동물 돌봄]

2026.01.30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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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규의 동물 돌봄 - (2) 곰을 굶기다… 공존 실험의 시작

 12월, 행동 느려지고 친근하던 활동가에 겁먹기도

3주 식단 감량 플랜… 13마리중 일부 자러 들어가

연말돼도 말똥말똥한 몇은 예민 반응, 항우울제 처방

1월중순 결단… 약 끊고 굶기니 짚 끌어모아 늦은 동면



동물을 돌보는 일은 언어를 아직 쓰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과 비슷한 점이 있다. 대개 돌봄은 사랑의 노동으로 포장된다. 돌보는 이의 선의나 돌봄 받는 이의 행복을 안일하게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돌보는 이와 돌봄 받는 이의 권력 차이가 클수록, 돌봄 받는 이의 필요가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려울수록 돌봄은 기대하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기 쉽다. 돌보는 이가 충분히 감응하지 않고 돌봄 노동의 방향과 질을 결정해 버리면 동물은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밥을 하루에 한 번 주면 한 번 먹고, 두 번 주면 두 번 먹는다. 웬만한 폭력적 대우에도 누군가 나서서 구해 주지 않는다. 동물 돌봄은 대단한 위험을 품고 있는 일이다. (인간) 사회가 나서서 도와주지도 않는다. 동물은 나름대로 의사 표현을 하지만 사회가 인지하고 외부의 도움을 받으려면 동물은 이미 크게 다치거나 죽은 뒤다. 그래서 동물 돌봄은 동물의 표정과 행동을 읽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 동물의 표현을 제대로 읽지 못해 본의 아니게 동물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사건은 어디에서나 늘 일어나고 있다. 겨울잠을 재우는 일도 어쩌면 하나의 나쁜 사례가 될지 모른다는 마음에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결단은 불안을 떨치게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몸을 움직일 방향을 정하고 행동이 시작되면 머물던 과거의 자리에 불안도 덜어 놓고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다만 우리 돌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애쓰면 되는 것이다. 곰을 돌본 지 삼 년째 겨울, 우리는 곰을 재워 보기로 결정했다. 온전히 인간의 판단이다. 농장에서 웅담채취용으로 길러지던 시기에도 겨울잠을 잔 경험이 있는 곰들이 있었고, 겨울잠 자는 중에 병들어 죽은 적은 있어도 굶어 죽는 곰은 없었다는 농장주들의 증언도 도움이 됐다. 지리산에 곰을 복원하는 국립공원공단 야생생물보전원을 찾아가 곰의 겨울잠에 대해 배웠다. 그들은 20여 년 동안 야생곰의 겨울잠을 연구했다. 야생 재도입에 실패한 곰들을 회수해 시설에서 기르며 겨울잠도 재우고 있었다. 겨울이 깊어지면 먹이량을 줄이다가 적절한 순간에 먹이를 끊으면 대부분 바로 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남 구례까지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정확히는 마음을 조금 놓기로 했다.


# 공존하기 실험

올해 우리는 세 번째 겨울잠을 준비한다. 두 번의 겨울을 무사히 나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곰을 살찌워야 하는 시간을 어떻게 조절할지, 유독 먼저 졸려 하는 곰을 어떻게 대할지도 감을 좀 잡았다. 잠자는 공간을 고르는 취향도 곰마다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누구는 CCTV가 없는 굴에 들어가 잠들어 겨우내 또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누구는 겨울잠용으로 넣어 준 물탱크에 들어가 짚에 푹 파묻혀 자는 모습을 화면에 드러낸다. 돌봄활동가들은 그들의 24시간을 각각의 방에 달린 CCTV로 돌려보고 기록하고 공유한다. 사람에게라면 스토킹에 가까운 감시지만 곰들은 감시가 이루어지는지도 모르고 불쾌함도 느끼지 못한다. 사람과 다른 존재를 돌보는 방법이다.



우리가 돌보는 곰들은 야생으로 다시 나가지 못하는 곰이다. 야생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고 사람에게 의존해 사는 삶만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야에는 곰이 살 공간도 마땅찮다. 한반도에서 50년 동안 이어지며 야생곰을 멸종시킨 웅담채취산업은 이렇게 끝나 간다. 그 과정에서 온전하지 못한 야생동물로 우리에게 남겨진 동물이다. 처분 연령이 지나 남겨진 곰을 사람이 다 도살하고 끝내는 방법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 곰들이 늙어 죽기 전까지는 당분간 함께 살기로 했다. 내년 봄에 곰이 깨면 우리는 또 혹한에 웅크리고 자느라 시큰거릴 그들의 관절을 걱정할 것이다. 동물과 공존하는 것은 내내 신경 쓰이는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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