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츄어리]첫 번째 편지

안녕하세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이형관 수의사입니다.
저는 지금 베트남의 애니멀스 아시아 곰 생츄어리에 와 있습니다. 지난 2월 저희 활동가들이 답사 차 이곳을 방문했을 때 애니멀스 아시아 측에서 곰에 대한 수의학적 트레이닝이 필요하면 도와줄 수 있다는 제안을 했는데요. 고민 끝에 제가 3개월 간 이곳에서 단기 인턴으로 지내며 노령 곰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수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배워 보기로 했습니다. 인턴을 시작하기 전에는 매주 또는 격주마다 여러분들께 소식을 전하겠다는 큰 포부가 있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매주는커녕 한달을 넘겨버렸네요. 소식은 매달 전해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첫 한 달 동안 저에게 주어진 업무는 생츄어리에서 수의팀의 역할과 업무 흐름을 이해하기와 곰의 마취 모니터링이었습니다. 수의사와 수의간호사들로 구성된 수의팀의 역할은 크게 건강 검진, 마취 담당, round vet, husbandry의 네 가지로 나뉩니다. 생츄어리의 곰들은 기본적으로 2년에 한 번, 고혈압과 같이 자주 확인해야 하는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는데요. 200여 마리의 곰이 있다 보니 사실상 매주 건강검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건강검진 수의사는 자신이 당번인 주에 계획되어 있는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검진 결과를 기록, 필요한 경우 약이나 추가적인 치료, 혹은 다음 건강검진 일정을 잡는 것까지 담당합니다.


제가 맡았던 마취 담당은 곰이 건강검진을 받는 동안 마취가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상황에 맞게 마취약이나 산소, 수액을 조절하는 일을 합니다. 곰은 반려동물처럼 보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방사선과 초음파를 촬영하고 몸 구석구석을 살피는 건강검진을 위해서는 마취가 필수적인데요. 곰이 마취된 동안에는 자신의 몸 상태를 조절하는 능력도 함께 떨어지기 때문에 호흡정지나 심정지가 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또 곰이 충분히 마취되지 않아 자극에 반응하거나 움직이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곰에게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곰의 마취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곰과 사람 모두의 안전을 위해 중요한 일입니다. 마취가 잘 유지되고 곰의 상태가 괜찮은 지 확인하기 위해 마취 담당은 5분마다 심박수, 호흡수, 혈압을 측정해 기록하는데요. 흉곽이 큰 곰은 청진기를 통해 심장소리를 듣기가 어려워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Round vet은 건강검진을 받는 곰을 제외한 다른 곰들의 건강 문제를 담당합니다. 곰을 돌보는 직원들이나 행동팀에서 곰이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많이 간지러워하거나, 혹은 평소보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등의 문제를 발견해 round vet에게 알리면 round vet이 직접 찾아가 곰의 상태를 확인한 뒤 치료 계획을 세우는 식으로 건강 관리가 이루어집니다. Husbandry는 쉽게 말해 입원 환자 관리라고 볼 수 있는데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온 곰들의 식사, 투약, 풍부화, 그리고 건강검진을 받은 후 방사장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곰의 회복을 책임집니다.


한 달 동안의 소식을 전하려니 생각보다 글이 길어지네요. 아직 들려드리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아쉽지만 다음 편지에 적겠습니다.
한국은 많이 쌀쌀해졌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이제서야 더위가 한 풀 꺾인 느낌이예요. 한국과는 날씨도 시간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른 이곳이지만 갇힌 곰들을 위한 마음만은 같아서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에 힘을 얻기도 합니다.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졸음을 청하는 이 곳의 곰들처럼 다음 편지를 보낼 때까지 여러분과 화천의 곰들에게 편안한 날들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베트남 탐다오에서 형관 드림.